2009 July 미대입시 Art & People - interview

Art & People

인생은 아름다워
思惟, 詩 그리고 생동하는 水墨


동양화와 카메라와 컴퓨터가 함께 하는 홍지윤 작가의 작업실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한다. 그녀가 꿈꾸는 자연의 시간(사계)과 공기는 지금도 흘러 간다. 여기 저기 안료를 묻힌 채 붓을 든다. 꽃과 새처럼 생동하는 정신과 사유를 운율에 담아 홍지윤의 동양화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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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양화에서 시작, 영상•,그래픽,•사진,• 라이팅 박스, •설치 뿐 아니라 •
인테리어, 건축, 제품 패키지 등 디자인 분야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당신에게 동양화는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작업은 전통동양화에 있어서 詩,書,畵(시서화)•紙,筆,墨(지필묵)로 부터
출발한다. 나의 시를 그림으로 그리고 영혼을 담는다.
그리고 동양화를 통해 어떻게 지금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또 동양화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한다.
동네에서 불이 났다면 강을 건너서 보아야 불이 얼마나 크게 났는지 세태를 살피고
불을 끄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불구경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분야를 다른 분야에서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또한 다른 작품들의 사조와 작가에 대한 연구 그리고 또한 정치, 문화, 경제, 사회 등 관해 충분한 탐구가 필요하고 지금을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분야는 나와 관계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이 흐르고 현재에서 미래를 향해 살아가듯 예술가로써 자신이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넓고 깊은 시각을 가져야
좋은 동양화를 구현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생각들이 그림으로써의 동양화뿐 아니라 설치나 사진 그래픽 영상 디자인 인테리어 등의 다양한 각도의 동양화를 선보이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2. 퓨전 동양화를 넘어 포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공존과 융합을 이루는 복합 문화를 추구한다고 했다. 홍지윤 작가에게 퓨전과 포스트는 무엇인가?

나는 동양화의 본질에 더 가까이 접근하고 싶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미래의 동양화이다.
그리고 그것이 포스트 동양화라고 본다.
이제까지의 지역적 특성이나 재료적 특성의 의미를 강조하는 동양화가 아니라 동양화안에서
배워왔던 인간과 자연의 관계 결국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당연한 동양의 진리를 세상의 사람들이 말하는 휴머니즘으로 지금의 사람들에게 설득도하고 내 그림자체가 그것을 말하는 하나의 사인이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리게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이 아닌가.
퓨전 동양화는 내가 진행하는 비전공자와 디자이너들을 위한 워크샵의 이름이었다.
동양화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서고 싶은 마음과 동양화를 현실화 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동양화는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바꾸고 감각적이고 활동적인 학생들도 동양화를 즐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퓨전인가 포스트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동양화의 관념적이고
고정화된 카테고리를 뛰어 넘기 위해 노력해왔고 노력할 것이다.



3. 작가로서의 길이 녹록치 않을 것 같다. 동양화 작가의 삶은 어떤가?

나에게 그림은 삶을 사는 방법이다.
작가는 직업이 아니다.
강사로서 진행하는 강의도 디자이너들과의 협업도 나에게는 작업의 연장이다.
수묵동양화에 기반을 두고 지향점들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몸으로 화선지, 먹, 붓을 다루면서 정신적 요가를 한다.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가는 마음으로 임한다.
완성된 경지는 죽을 때에나 맛 볼 수 있을 듯하다.
사실 거의 매년 전시를 하면서 정말 힘들었다.
서른 초반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이후, 나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긴장했고 그 때문에 행복했다. 언제 삶을 떠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러니 최선을 다해야 했고 그것을 즐겼다. 어머니 사후 한 3년간 극심한 슬픔을 잊기 위해 작업에 매진했다. 지금은 힘들어서 그렇게 못하지만 30대 초•중반을 거쳐오면서 세 시간씩 자면서 작업했다. 이런 기회가 다른 이에게는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단 1초도 나에게 주어진 행운이라고 여기며 그렇게 달렸다.
그때부터 차차 작업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릴 때 존재감을 느낀다. 나의 모토가 “순간을 소중하게 “이다.
한 순간이라도 충실하지 않다면 인생의 자신감도 사라질 것이다.
힘들지만 그 상황을 즐기게 되었다. 힘든 만큼 보답이 있더라.
얼마 전 한 친구가 그런다. “쉬우면 재미없잖아” 그 말이 참 매력적으로 들렸다.




4. 많은 동양학과 지망생들이 졸업 후 진로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 현재 강의를 하는 사람이자 동양화 작가로서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전공의 본질을 파악하고 순수예술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말은 나무의 뿌리를 알아야 열매가 어떻게 열리는가를 안다는 말과도 같다.
순수미술과 관련된 기초학문에 집중하고 미술의 역사를 진지하게 공부한다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작가로 살아갈 것이며 동양화를 통해 어떤 열매를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공부를 깊이 있게 하지 않은 채로 단지 달디단 열매만을 찾으려고 한다.
씨를 썩이고 싹을 틔워서 먼저 자기가 나무가 되어야 하지 않은가
원론은 생각하지 않고 “이걸 갖고 돈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부분에만 몰두하게 된다는 게 문제다. 좀 더 진지했으면 좋겠고 내가 왜 동양화를 하려는지 먼저 생각 해 봤으면 좋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공부가 하나도 힘들지 않다.
그리고 동양화는 절대로 비현실적인 그림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동양화에서 말하는 자연은 늘 우리 곁에 있고
사람은 끊임없이 태어나고 끊임없이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5. 동양의 사상은 순환을 내포한다. 현재 동양화의 위치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보는가?

세계적으로 지금과 미래의 이슈는 환경과 생태 그리고 인류의 공생이다. .
앞서 말했지만 동양화는 바로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일부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동양화는 그것을 말하는 그림이다.
이제 서구의 교육을 받은 동양인들이 그들의 말을 빌어 서구인들에게 동양을 효과적으로 알리게 되었고 그것을 파악한 서구인들은 점차 동양의 신비한 파워에 놀라고 있다.
모든 것의 궁극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휴머니즘이다.
각 장르마다 방식은 다르겠지만 예술적 접근 방법에 있어 휴머니티는 강력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것의 전통이 깊은 동북아로 문화의 중심이 올 때도 멀지 않았다고 본다. .
서구의 작가들도 동양을 추구하고 있다. 현재에는 중국 미술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머지 않아 우리나라가 그 자리를 대신하지 않을까 한다.
내가 믿기로 한국정신은 그들 보다 앞서가는 신비한 에너지와 뛰어난 퀄리티를 지니고 있다. 붉은 악마를 보라. 세상 어디에도 그러한 힘은 없다.
단지 우리는 유태인이나 화교들과 같이 문화적 자긍심을 더 많이 키워야 하고 수준 높은 문화교육으로 문화의 이해를 좀 더 높이고 좋은 정치로 좀 더 부자나라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6. 동양화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작업에 있어서 영감을 주었던 작가, 니키 드 생팔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는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은 프랑스 작가이다. 초반에는 사회참여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후 여성성에 관해 개방적인 보폭을 넓게 밟아나갔다. 색채와 스케일이 크고 거대하면서도 결코 무겁거나 어둡지 않으며 무엇보다 삶의 활기와 생명력을 띠는 작품 세계를 나타낸다. 그녀가 남편 쟝 팅겔리와 함께 퐁피두 센터 앞에 설치한 분수를 보면 미술은 어렵고 무거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 깊이를 놓치지 않고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한 아름다움 대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삶의 환희를 내포한 스펙트럼과 생명력을 추구했다는 점이 나를 매료시켰다.




7. 기능적 측면과 문화적 해석에 대한 작업 의지는?

동양화도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싶었다.
옥천의 정지용 시 마을, 삼청동 인포메이션 센터, 천호동 LED 설치미술, 이천아트센터개관전에 선보인 설치작업,,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을 동양화로 그린 책을 작업했다.
작가로서 기본이 탄탄해야만 이러한 일들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만큼 지나친 상업화는 지양해왔고 앞으로도 배제하고 싶다. 나의 분야에 충실할 때 조각, 환경, 공간으로의 확장이 가능하기에 내 몸을 사용해서 기본을 지키는 회화작업에 더욱 노력할 것이다.
틀이나 방식보다는 작업의 성격이 작가로서의 나를 말해주는 원동력이다.
나의 기본은 그림이다. 기업이나 디자이너 또는 디렉터가 나의 작품을 필요로 했고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천호동 LED 설치미술이나 오휘의 코스메틱 제품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상품 과 여러 디자인에 나의 그림이 사용되었던 것은 그들이 내 작품의 요소를 원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진행은 회화작업과 더불어 여러 미디어를 적용한 공간작업을 추구한다.
물리적인 공간의 규모를 늘리고 싶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환경과 생태를 지향하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제안하는 문화를 추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을 적시게 하는
가슴으로 말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또한 박사과정이 진행되고 난 후 그 동안의 작업을 바탕으로 한 동서비교문화에 관한 학술서적을 내고자 한다.




8. 시의 운율과 조형성 그리고 지필묵에 관심과 애정이 깊다.

문인화 전통에 의한 詩,書,畵와 紙,筆,墨은 나에게 작품을 위한
도구이자 재료이며 미디어이다.
나에게 시는 작품의 컨셉이며 시를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내 작업의 성격이다.
일상의 단상을 시로 적고 노래를 하듯 그때 그때의 형편에 맞게 글씨로 쓰고
그림을 그린다. 기쁠 때는 기쁘게 슬플 때는 슬프게
紙,筆,墨은 나에게 전통적인 것 뿐만이 아니라 가장 현대적인 매체이다.
단지 그것을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있어서 어떻게 규명하는가가 중요하다.
어떠한 재로든 다른 작가와 엄밀히 차별성을 두어야만 자신의 재료로 거듭날 수 있다.



9. 2006년 독일 레지던스에서 형광안료를 발견, 음유낭만환상(2007년)에 사용했다.
뮌헨기간 동안 월드컵 축제 영상을 제작했다. 유럽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지금은 없어졌지만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 나오는 학교인
성심여자국민학교를 다녔다.
천주교학교였기 때문에 천주교 행사를 늘 열었고.
국제학교와 함께 있었고 학교의 건물이 한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서구, 특히 유럽의 문화를 접했고가깝게 느꼈다.
십 년 전쯤부터 전시 차 매년 유럽을 다니면서 지인을 늘려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동양인으로서의 나와 서구의 친구들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서로를 비교하고 이해하게되면서 인간과 동서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게 되었다.
물론 미술관이나 중요한 전시를 보면서 미술적 시각이 확장 되었다.
문화는 서로 교류하고 충돌하면서 발생하고 세상은 다양한 문화가 생성되면서 발전해 왔다. 동서양의 문화와 미술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스펙트럼을 넓히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시대에 설득력 있는 동양화를 하게 될 것인가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동양의 정신에 대해 탐구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서구 정신의 발상지인 유럽을 가까이
하게 된 것 같다. 최근에는 독일 뮌헨 시 문화부의 초청으로 한동안 뮌헨에 머물면서
작업도하고 위의 작품도 전시하면서 작가로써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10. 지난 해 개인전, <인생은 아름다워>를 열었다. 인생은 아름다운가?(추가질문)

인생은 쉽게 아름다울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도록 소중히 가꾸어야 한다.
나에게 인생은 선물이다. 언제나 여백을 남겨둔 채 어떻게 무엇을 채우겠느냐고 물어 온다.
여백을 아름답게 채울 수 있도록 하는 내 노력과 정성은 그림이다.
그것이 내 인생이고 그런 기회를 갖게 된 것이 감사하고 소중하다.
인생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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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업은 자유로움에 대한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사유의 공간적 재현이다.” 화가 홍지윤

“동양화는 시(詩)이다. 나의 작업은 詩를 짓고 그 시를 글씨로 옮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나에게 수묵(水墨)은 물과 먹에 의한 단순함과 자유로움 그리고 자연스러운 다양함을 나타내는 정신이다.” 화가 홍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