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14

요즘 왜 난 원시적인 큰 그림에 집착을 할까

큰 그림에 욕심을 내다보니 정말이지 화판 값 치루기만 국산승용차 한 대 값이다.

이미 현실적인 돈의 가치는 잊은 지가 오래이긴 하지만 챙겨야할 식솔들은 없지만

이제 나이가 드는 지라 그런 사실들에 정신적으로 적잖이 휘둘리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미련하고도 원시스럽게 사진이나 그래픽으로 죽 뽑아도 좋을 커다란 그림을

오른 팔 결려가며 희구하고있는 걸 보면오랜시간 나 스스로를 겪어왔던 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늘 늦게야 깨닫는 나기기에 대체 무슨 영문일까 기다려보기로 하고 괴로운 기다림의 시간을

본격적인 그림그리기 전 뜸들인다는 명분으로 머리로만 전시일정에 쫒기며

시작도 못한 채 한달도 넘게 3개 방송국 연속극 시간표를 꾀어가며 보냈다. 답답했다.



오늘새벽 드디어 좌로는 침대자리와 우로는 그림들이 쌓여있는 테이블가를 힘닿는 데까지

밀어붙이고 작업실의 공간을 확보하였다. 이제 하나님 내려오신 듯

130호 종이 8장을 위 아래로 깔고 (계획대로라면 위 아래줄 두줄로 각각 6장이어야 했지만 여기까지가 공간의 한계였다.) 접신하듯 양동이에 가득한 각각의 물감에 젖은 커다란 붓들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큰 그림은 나에게는 '진실'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동과도 같은가 보다.



종이에 붓이 닿음과 동시에 너무나 반가운 사실을 만난다.

얼마만에 맛보는 희열인지. 절대시간 절대 기다람의 시간을 보낸 후 얻는 사막의 물과도 같은

마치 몇십년만에 만난 오랜 벗을 만난 듯 . 봅비를 만난 듯,

뇌의 오른편과 왼편이 함께 움직이고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고

모든 종류의 감정이 정해지지않은 하나의 감정으로 용해되면서

그동안 내 몸으로로 흠수되어왔던 모든 아름다운 요리들과 향기들이

피부구멍을 통해 공기속으로 번지면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이 어깨와 팔로 이어져 손가락에 이어짐과 동시에

무언가가 무언가가 그려져 간다는 사실.



그래,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시력을 잃어가던 쇠잔한 쥴리엣 비노쉬가

한밤중, 컴컴한 미술관에 걸려있는 자기의 몸보다 훨씬 커다란 램브란트의 그림을

등불을 들고 꼭 찾아서 보아야만했던 이유가 다 있는 거다.



내가 온 몸으로 큰 그림을 자꾸 그리고 싶어하는 이유가 다 있는 거다.

아무리 컴퓨터가 널을 뛰고 집체만한 조형물들이 판을 치고있기는 하지만.



나 스스로 '진실'에 목이 말라있는 거 였다.

아직도 나 스스로 그게 무엇인지 규명하기가 힘에 부치고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