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 Exhibition critic 2005-2008

2008
나우 갤 러 리 기 획 초 대 : hongjiyoon’s 13th solo exhibition - photo works 2008
”Bohemian Edition”
2008_1001수 ▶ 2008_1007화

문화의 비빕밥-홍지윤의 퓨전 동양화
윤진섭 (미술평론가, 국제평론가협회부회장)


바야흐로 ‘퓨전’의 시대다. 음식도, 예술도, 문화도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이 뒤섞여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말로 융합을 의미하는 ‘퓨전(fusion)’이란 현상은 이웃간의 경계가 분명하여 서로 왕래가 없던 시절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지배하는 현대에는 이러한 현상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지구촌 자체가 하루의 생활권에 들어와 있고, 이메일을 이용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소통하는 환경에서 자기 것만이 최고라고 고집하는 태도가 전혀 미덕일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홍지윤이 소위 ‘퓨전 동양화’라는 것을 들고 나와 자신의 소명으로 삼은 지도 몇 년이 지났다. 그 작업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는가.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최근 북경 따산즈 798에 있는 컵갤러리에서 본 그의 작품에 대해 말해야겠다.

방 두 개로 나누어진 컵갤러리 전시장은 비록 크진 않지만 그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수묵화 대작들과 동영상 작품들로 인하여 꽉 찬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뭐랄까, 작품이 공간을 압도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에 그 작품들은 인근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의 페이스갤러리 개관기념전에 출품된 바스키아나 앤디 워홀, 중국의 왕광이 등의 작품보다 더 힘이 있어 보였다. 홍지윤은 거대한 크기의 한지에 노란 국화꽃을 크게 확대해서 화면에 꽉 차게 그리고 여백에는 시를 써넣었는데, 이 방식은 퓨전 동양화를 지향하는 그가 최근 몇 년간 심혈을 기울여 추구해 온 양식이다. 마찬가지로 무지개 바탕에 시와 그림을 병행하여 그린 그림들이 또한 출품되었는데, 이 작품들은 그 호방한 스케일에 못지않게 내용 또한 대범한 것이어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정작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작품의 내용이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정신에 관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가. 나는 문인화의 오랜 전통인 ‘시서화(詩書畵)’ 삼위일체 사상에서 그 뿌리를 찾고 싶다. 시와 글씨, 그림이 하나의 화면에서 만나는 이 동양화의 오랜 전통은 서양의 회화 전통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서양의 경우 문자의 등장은 20세기 초엽에 피카소가 ‘journal’을 암시하는 ‘jou’와 같은 특정의 단어를 기입한 것이 최초다. 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뿌리에서 출발한 이 전통은 곰브리치가 ‘예술과 환영’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동양의 회화가 지닌 독자적인 풍미다. 홍지윤의 퓨전 동양화는 당연히 동양의 이 유구한 전통에 기대고 있다.

방향이 정해진 이상 홍지윤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마치 비빔밥과도 같다. 사발의 맨 밑바닥에 밥이 있고 그 위에 다양한 나물과 고명을 얹는다. 밥이 동양 혹은 한국의 정신이라면, 그 위에 얹는 나물이 동양의 것이 됐던 서양의 것이 됐던 무슨 상관이랴. 또 사진이면 어떻고 퍼포먼스면 어떠랴. 매체에 자유롭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다양한 이미지와 글씨, 사진이 한데 어울려 컴퓨터의 합성을 통해 중첩된다. 그것은 마치 각양각색의 금속품을 넣어 제련하는 용광로와도 같다. 그것이 바로 퓨전이 아닌가. 생활 속에서 발견한 사물의 모습에 대한 단상을 비롯하여 사랑에 관한 시, 새, 꽃, 여인의 아름다운 이미지, 독창적인 칼리그래피로 쓴 한글, 한문, 영자 등등 한데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그것은 매우 화려한 세계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하다. 시각적으로 강할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강렬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 패셔너블한 세계가 바로 홍지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열정과 삶에 대한 강한 긍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강렬한 색채의 향연이 장차 더 큰 세계의 무대에 나갈 수 있는 출구를 열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Depiction of mixed culture on the Fusion-styled Oriental Painting
:Hongjiyoon’s Fusion Oriental Painting
Yoon Jin Sup (Art critic, Vice president of the International Art Critic Association)

We are now in the midst of the Fusion. Foods, art, and even cultures are just mingling with some different kinds of things which are never seen before. Phenomenon of fusion which would mean convergence was never found when the boundaries were fixed and there were no other interactions between them. However, these phenomena are becoming more and more unavoidable in the contemporary era dominated entirely by internet-based world. All over the globe, there is a living space of a day and we can reach to each other tens of times in a day via e-mail. In these circumstances, the attitude of sticking to one’s own view stubbornly cannot be a virtue anymore.

It has been several years since Hong brought her works as ‘the Fusion-styled Oriental Painting’ and adopt that her calling. Nowadays, what phase are the works getting into? Before going to those mentions, I should tell you a story of her recent works which had been exhibited at Cup gallery in the Tasants798.

The Cup gallery divided into two halls was not that big much, however her paintings and media works with splendor and magnificence make that space filled up perfectly. It would be more right to say that Hong’s works overwhelmed the whole space. Those pieces, I think, seemed to be more powerful than the works of Basquiat, Andy Warhol, Wang Guang Yi which were exhibited at the opening ceremony of the Face gallery. Hong draws the yellow chrysanthemum much bigger magnified on the very large canvas and wrote the poem in the blank. This is the way of her doing to pursuing the Fusion-styled Oriental Painting for the last years. Likewise, there’s another pieces of drawing seen both poetry and images on the base of rainbow-painted canvas, these paintings captivated visitors’ eyes because of daring meaning of substances, as well as large-scaled features.


However, what I mean to say at this matter is not the contents of work itself, but the spirit of that she has pursued till now. Where is her work originated from. I would like to follow up the root from the thought of trinity in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s which is a long tradition. The history of putting into those three things on one canvas cannot be found in western art history. In western, characters in a painting first appeared in the Picasso’s painting in the way of filling up the special word like ‘jou’ which may means ‘journal’. Like this, there is different history of paintings as Gombrich acknowledged it in the ‘Art and Illusion’. Hong’s the Fusion-styled Oriental Painting exactly comes from genealogy of the eastern culture.


Since she determined her own direction of her work, her work has got more and more clarified and distinguishable than before. Her work style can be said like Bibim Bab(Korea traditional rice cuisine with assorted mixture vegetables). Shortly, the rice is placed at the bottom of the bowl, and put various vegetables and garnishes onto the rice. If the rice is the spirit of the eastern or Korean cultures, what's big deal with that the vegetables are from the East or from the West. Moreover, what if that could be pictures or performances. Hong cannot be contained from one media, so nothing can be an obstacle from her doing in all formalities. Many kinds of images, characters and photos are overlapped through computer-generated images. That’s like the furnace which smelt all the metal materials. That could be the fusion we usually think about. From the random thoughts found in our daily lives, poetry of love, birds, flowers, enchanted images of a woman, characters of Korean, Chinese and English written with creative calligraphy etc., all of these stuffs harmonize with one another and give off a bit of astounding atmosphere. That is more powerful than anything else. That has not only influential characteristics on visual, but also some impactful appeal in subjects.


This very fashionable life is what Hong has intended to show us. I wish her fervent enthusiasm and feast of these brilliant colors from the affirmative attitude of life would open up the door to the stages of the big, big world.


월간미술 Review _ November 2008.

흥지윤展 10.1-7 갤러리 나우



문화의 퓨전현상을 두고 어떤 문화평론가가 어디선가 그랬던 거 같다. 문화에서 퓨전, 즉 섞음 현상은 실제로 제대로 된 섞임이 아니라고.
조수미가 대중가수 조용필이나 시인 정지용을 노래할 순 있지만 대중가수가 오페라나 아리아를 가요로 부르는 건 불손 하다는 거다.
불손할 거까진 아니지만 대중문화의 편에서 여전히 고급/순수문화는 융합할 수 없는
순수한 대상이라는 거다.
사실 예술의전당에서 가요를 들을 순 있어도 홍대에서 오페라를 듣기는 확률적으로 매우 힘들다. 오페라 가수는 간혹 가요를 부르지만 가수가 오페라를 부르는 모습은 보기 드물다 .
그런 점에서 퓨전은 사실 대중문화의 고급 혹은 순수문화를 향한 외로운 짝사랑 혹은 흘사랑? 물론 현상으로만 보자면 문화에서 퓨전은 넘친다.
퓨전음식, 퓨전사극, 퓨전음악등. 홍지윤의 작품 역시 '퓨전이다' 라고 예단하고 보면 그의 이번 개인전 작품은 동양화라기 보단 사진에 더 가깝다. 홍지윤이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선지평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의 이번 작품들을 과감히 동양화, 그러니까 퓨전 동양화라 할 수 있을까?
물론 낙관이나 붓으로 쓴 먹글씨로 동양화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겠다. 그런 소재주의로 치자면 컴퓨터 합성과 디아섹 지지체는 작품을 사진의 장르에 훨씬 기울게 만든다.난 오히려 이번 홍지윤의 작품을 퓨전사진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진기로 사물을 포착하고 그 위에 텍스트를 남기는 퓨전사진. 바로 이런 점, 퓨전의 국적 불명 성, 정체 불명 성, 소재불명성이야말로 하이브리드가 가진 장점일 터다. 그의 작품은 그러니까 동양화. 사진, 시, 페인팅, 디자인 그 모두의 언저리에 걸쳐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무엇보다도 텍스트다. 시다. 그리고 그가 화면 가득 써 놓은 시구들은 '대개 그러한 것들'이다. 대개 그러한 것들. 나이듦과 떠남, 바람과 빛, 대기와 소음이 가져다주는 일상과 클리셰다. 이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보헤미안 에디션'들은 대개 그러하듯 머물지 않고 떠난다. 금세사라지는 뿌연 아지랑이 같은 이미지들을 시어들이 꽉 잡고 있다. 가령 밥 딜런의(Blowing In the wind) 노랫가락은 콘트라포스트로 서있는 금발 여인과 결합하여 색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시어들이 그림의 여백을 채우고 그림은 시어로 인해 풍성해진다. 서양화에선 결코 어울리지 못했던, 그래서 말 없는 시' (회화)와 '눈먼 그림' (시)이라 폄훼된 둘이 그의 화면에서 조화롭게 동거 한다.
정형탁 ․ 전시 출판 기획자
http://www.fnnews.com/view?ra=Sent1301m_View&corp=fnnews&arcid=080731165151&cDateYear=2008&cDateMonth=07&cDateDay=31
2008 8월1일자 파이낸셜 뉴스 - [미술평론가 윤진섭의 문화탐험] (14)
시는 그림과 같이 , 그림은 시와 같이

■인간의 몸은 사랑의 주체이자 객체
시와 그림의 통교를 시도 ... 회화의 관례에 저항
/ '인생은 아름다워'연작 유명 '붓질하는 음유 시인

이제까지 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오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랑을 빼먹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시인, 소설가, 철학자, 화가들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마르지 않는 샘처럼 사랑은 아직도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하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다.

사랑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군주와 신하 사이의 사랑, 스승이 제자에게 베푸는 사랑….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은 역시 남녀간의 사랑이다. 햄릿과 오필리어 사이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 때문에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고 만 불행한 사랑의 표본이다.

그러나 사랑이 죽음을 불러오는 것만은 아니다. 예술가에게 있어 사랑은 영감의 원천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파블로 피카소. 그는 생전에 페르낭드 올리비에, 에바 구엘, 올가, 마리 테레즈 발터, 도라 마르, 프랑수아즈 질로, 자클린느 로크 등 모두 일곱 명의 여성과 사랑을 나눴는데, 그때마다 화풍이 바뀌었다. 어디 그뿐이랴. 루 살로메를 사랑했던 니체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비롯하여 쇼팽과 조르주 상드, 보들레르와 잔느 뒤발,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 황진이와 서화담 등 출중한 예술가들이 벌인 세기적 사랑은 그들이 나눴던 사랑의 내용이 행복했건 불행했건 간에 유명세로 인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남녀를 막론하고 인간은 사랑이란 벌의 침에 일단 쏘이면 그 묘약에 취해 정신을 잃는다. 이 때 몸에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는데,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이란 성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이 바로 그 것. 그래서 헬렌 피셔 교수는 사랑을 일러 다름 아닌 ‘화학적 반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화학적 작용이건 정신적 작용이건 ‘몸’이 없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사랑에서 몸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시경의 국풍(國風) 편 첫머리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워도 얻지 못해/자나 깨나 생각/아, 끝없는 시름이여/잠 못 이루고 뒤척이네(求之不得/寤寐思服/悠哉悠哉/輾轉反側).”

여기서 맨 끝에 나오는 ‘전전반측’이란 말은 긴긴 밤에 그리움 때문에 잠 못 이루고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는 동작을 나타낸다. 낮에 나물캐는 처녀를 밭에서 본 총각이 눈에 어른거리는 처녀의 모습을 못 잊어 밤을 하얗게 밝히는 형국이다.

홍지윤의 ‘인생은 아름다워’ 연작을 보면서 문득 시경의 이 구절이 떠올랐던 것은 웬일일까. 그녀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의도를 “시를 지어 그림으로 그리고 기록으로 남긴다. 꿈결 같은 인생, 인생은 아름답다”라고 썼다. 말하자면 시도 짓고 그림도 그리는 방법을 통해 내면에 일렁이는 온갖 상념과 감정을 하나의 화면에 풀어내자는 것. 그림에 문자를 집어넣는 수법은 서양의 경우 1910년을 전후하여 피카소와 브라크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오랜 관행이었다. 이른바 그림의 여백에 화제(畵題)를 써넣는 ‘시서화(詩書畵)’ 일체의 사상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홍지윤의 ‘퓨전 동양화’ 혹은 ‘시그림’은 서양보다는 동양의 오랜 회화 전통에 기대고 있는 것이 분명할 터. 아무튼 그녀가 그림 속에 써넣은 시구를 인용해 보자. 먼저 ‘꿈결같은 인생’이다.

“노래하는 푸른 하늘/노래하는 강 물결/노래하는 분홍 꽃잎/노래하는 마지막 잎새//흥에 겨운 한 때/꿈결같은 인생.”

홍지윤은 화려한 꽃과 새, 벗은 여인의 몸을 화면 가득히 그리는 한편, 그 사이사이에 시를 써넣는다. 배경은 흰 것도 있지만 먹으로 검게 칠한 것이 더 많다. 한글과 한문, 그리고 때로는 영어로 쓴 문구들은 그림에 담긴 사물들 사이에 마치 숨바꼭질하듯이 숨어 있기도 하고, 때로는 그림과 같은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홍지윤은 시를 씀과 동시에 그림을 그린다. 거기, 그림의 한 복판에 벌거벗은 한 여인이 춤을 추고 있다. 흐드러지게 핀 장미와 벚꽃에 파묻혀 있는 그녀의 몸을 이파리가 주렁주렁 달린 넝쿨이 휘감아 흐른다. 이 그림에 녹아있는 관능미는 과연 어디서 오는가. 춤을 추는 모습을 뒤에서 포착한 이 그림에서는 양옆에서 몸을 파묻듯이 감싸고 있는 화려한 꽃들로 인해 더욱 관능미가 느껴진다.

게다가 잘 익은 복숭아에서 풍기는 듯한 달콤한 죽음의 냄새. 그러나 그것은 육신의 죽음보다는 오히려 활짝 핀 꽃의 이울음이 주는 연상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아니면 화면을 가득 뒤덮고 있는 검정색에서 오는 것일까. 다시 그녀가 쓴 시 ‘그녀, 아름다운 꽃’을 보자.

“고운 흙 위에서 작은 그녀가 잠깐 낮잠을 자고 있었다/지나가던 바람 한 자락이 바다를 구경하러 가려다/그 고운 자태에 눈이 멀어 그만 그녀를 깨워 춤을 추기 시작했다/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다/그녀를 소모하기 시작했다.”

고대 희랍에서는 시와 그림을 서로 동떨어진 것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호라티우스는 ‘시는 그림과 같이(ut pictura poesis)’란 유명한 발언을 통해 멀리서 봐야 할 그림과 가까이서 봐야 할 그림이 있는 것처럼 시의 해석도 서로 다르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원리가 전복되는 것은 ‘그림이 시를 모방하고(그림은 시와 같이:ut poesis pictura)’, ‘시는 그림을 본받도록 했던(시는 그림과 같이:ut pictura poesis)’ 근대의 예술원리가 태동하면서부터다.

홍지윤은 ‘인생은 아름다워’ 연작을 통해 시와 그림의 통교(通交)내지는 혼합을 시도함으로써 이미지뿐인 회화의 관례에 저항한다. 그녀는 시를 읽으며 그림을 보는 듯 하게 만들고, 그림을 보면서 시를 연상케 하는 형식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거기서 인간의 몸은 사랑의 주체인 동시에 객체다. 마치 사랑하면서 소모되듯이.


■ The human body is both a subject and an object of love.
An attempt to relate poems and pictures closely... A resistance against the conventions of painting / well-known for the series of 'Life is Beautiful' / a painting minstrel

As I have told you a story about body up to now, I forgot mentioning the most important thing, the love. What is love? In all ages and countries, a number of poets, novelists, philosophers, and painters have talked about love, and it is one of the essential subjects that constantly stimulate artists’ inspiration as a spring that never gets dry.

There are several types of love. Love between parents and children, love between a lord and his retainers, and love between a teacher and students… Yet, what attracts us most among them is the love between a man and a woman as expected. The love between Hamlet and Ophelia is an example of sad love in which they had to die by the hopeless destiny.

However, love is not necessarily accompanied by death. Love is the source of inspiration for artists. A typical example is Pablo Picasso. In the lifetime, he fell in love with seven women, all told, Fernande Olivier, Eva Gouel, Olga Khokhlova, Marie-Thérèse Walter, Dora Maar, Françiose Gilot, and Jacqueline Roque, and his painting style changed according to which woman he loved at that time. There are plenty of extra examples. Including the love of Niche and Rainer Maria Rilke toward Lou Andreas-Salome, love between Chopin and George Sand, Baudelaire and Jeanne Duval, Frida Kahlo and Diego Rivera, Catherine Hepburn and Spencer Tracy, Rodin and Camille Claudel, and Hwang JinEe and Seo HwaDam, distinguished artists’ love of the century has been cited for the price of fame regardless of whether the love was happy or not.

Regardless of sex, human beings lose their mind once they get stung by love as intoxicated by the wonder drug. At this time, some chemical activity occurs in the human body, which is the secretion of sex hormones such as testosterone and estrogen. That is why the professor Helen Fisher said that love is nothing but ‘a chemical reaction’. An important fact, however, is that ‘a body’ is necessary regardless of whether it is a chemical reaction or some kind of mental activity. The beginning of the Gukpung (國風) part in Sigyeong tells us how important the body is in regard of love as follows.

“I miss her but cannot get/Thinking about her all days and nights/Endless sorrows/I cannot sleep as I toss and turn (求之不得/寤寐思服/悠哉悠哉/輾轉反側).”

In the last part of this quotation, ‘JeonJeonBanCheuk (輾轉反側)’ refers to an action that one tosses and turns not sinking into a sleep on a long night because of deep yearning.

Why did this verse of Sigyeong burst upon me while I was appreciating Hong JiYun’s series ‘Life is Beautiful’? She wrote about her purpose of painting like this: “I write poems, and draw and record them. A moonstruck life. Life is beautiful.” In other words, she intends to express on a single screen all her conceptions and feelings bobbing up and down in her inside through writing poems and drawing pictures. The technique of putting letters onto a picture was started by Picasso and Braque in the west about the 1910’s whereas it has been a long practice in the east. For example, ‘Siseohwa (詩書畵)’, the idea of writing the title of a painting in the margin has been typical. Thus, Hong jiyoon’s ‘Fusionized oriental painting’ or ‘Poem-picture’ must be oriented from the old eastern painting tradition rather than the western one. I would like to quote the verse that she wrote on her painting. It starts with ‘Life like a dream.’

“The singing blue sky/the singing river stream/the singing pink petal/the singing last leave/a moment of joy/life like a dream”

While she draws splendid flowers and birds and a naked woman’s body full to the brim of the screen, she also writes poems in between them. The background is sometimes white, but many of them are drawn black with Chinese ink. Verses written in Korean, Chinese, or sometimes English are in between the objects drawn on the painting as if they did hide-and-seek, or occupy equivalent proportion to the painting itself.

Hong jiyoon draws and writes poems at the same time. And there, in the middle of the painting, a naked woman is dancing. Her body embedded in roses and cherry blossoms come out gorgeously is entwined with an ivy heavily laden with leaves. Where do the voluptuous charms melted on the picture come from? The picture that captures the back of the dancing figure adds more voluptuous beauty due to the fabulous flowers wrapping her body in both sides as smothering her.

Besides, smell of death sends forth which a ripe peach would shed. Yet, it seems to come from the association of the flowers in full blossom with their withering, not the death of the flesh. Or it may come from the black color that covers the screen. Let’s look at her poem ‘The lady, a beautiful flower’ again.

“A little lady was taking a nap for a while on fine soil./A puff of wind that was going to see an ocean/became blind for the beautiful figure and started to dance to wake her./It begins to love her./It starts wasting her.”

In ancient Greece, people regarded the poem and the picture differently. For this reason, Horatius emphasized that as there are pictures needed to be appreciated in the distance and there are ones for a close look, poems should be interpreted differently, too, by saying ‘Poems like pictures (ut pictura poesis)’. This principle was turned over when the modern art principle was born which made ‘pictures imitate poems (pictures like poems: ut poesis pictura)’ and made ‘poems model pictures (poems like pictures: ut pictura poesis)’.

Hong JiYun objects to the conventions of painting with just images by trying to relate or mix poems and pictures in the series ‘Life is Beautiful’. She talks about love through a form of letting us feel we look at a picture while reading a poem and also letting us associate a picture with a poem. In there, the human body is a subject of love and also an object of it, too. As it does the acting of love and also gets wasted.



계간지 뷰즈 2008 겨울호

홍지윤 論 : 인생이 아름다울 때

윤진섭(미술평론가/본지 편집위원)


지난 겨울, 온천지대로 유명한 일본의 벳부에 놀러 갔다가 호텔에서 동양의 음식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일본은 사시미와 스시 등 생선 요리가 유명하고 중국은 센 불에 튀긴 기름
진 음식이 주종을 이루는데, 아무래도 한국은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끓인 탕과 비빔밥, 신선로,
구절판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일본과 중국은 각 요리를 하나씩 음미하는데 비해 한국의 요리는 여
러 음식을 한 입에 넣고 씹어서 이것들이 서로 뒤섞이는 가운데 우러난 맛이 특징이라는 점이
다. 즉, 한국 음식의 맛은 다양한 재료의 성분들이 자아내는 ‘컴비네이션’에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퓨전(fusion)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한다.
융합을 의미하는 퓨전은 다양성이 특징이다. 다양한 요소와 성질들이 한데 모여 화학적 변화를
이루는 가운데 전혀 다른 내용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 퓨전이다.
가령, 미국은 다인종 사회인데, 그런 미국의 문화는 퓨전적이다. 그래서 미국문화를 가리켜 다문
화주의(multi-culturalism)라고 하는데, 이는 특정한 인종이나 민족의 문화를 편들 수가 없기 때
문에 그냥 모든 것을 용인하는 데서 온 것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홍지윤이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예술의 내용이 바로 이런 것과 닮아서 나의
관심을 끈다. 최근에 나우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이 전시의 제목을 그녀는 Bohemian Edition이
라고 붙였다-은 사진을 이용하여 자신의 관심사를 표현한 것이다.
그녀의 사진에 대한 감각과 재능은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을 통해서 확연히 드러났거니와, 아
무튼 자기의 전공분야가 아닌 사진에 대한 과감한 도전은 가히 잡식성에 가까운 그녀의 저돌적
인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사실 그녀의 이런 행보는 동양화의 순수성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사건이다.
그녀는 비단 사진뿐만 아니라 이미 출판, 서체 디자인, 퍼포먼스, 시 등등 광범위한 문화예술의
영역에까지 손을 뻗고 있으니, 그 응용은 가령, 그림을 포함한 서체 디자인만 해도 건축, 화장
품, 문화상품 등 다양한 분야에 이르고 있다. 미술이 순수성을 버리고 생활영역에 침투하게 된
것은 이 시대의 요구다.
즉 퓨전이 주류문화(mainstream culture)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디자인의 발
달은 순수미술을 밀어낸 직접적인 동인이었다. 바우하우스에서부터 팝에 이르는 디자인의 역사
는 미술과 생활을 융합하는 실천적 과정이었던 것이다. 생활 속으로, 생활 속으로, 디자인은 과
자의 포장에서 컴퓨터 게임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질과 내용을 끊임없이 바꿔놓고 있다.
21세기 현대문명의 총아인 컴퓨터는 화가들이 새로운 세계를 실험할 수 있는 장을 열어 주었
다. 포토샵은 그야말로 ‘훌륭한 신세계’다. 홍지윤이 이번에 붓과 먹, 종이에 의한 직접적인 표현
을 떠나 이미지의 컴퓨터 합성을 시도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정확히 읽어냈기 때문이다. 시대에

부응하는 예술이란 다름 아닌 그 시대의 기술적 성과를 이용하는 예술이다.
예술가들은 이제 시대에 부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대를 선도하고자 한다.
사진을 크게 확대하여 처리한 (C-print Mounted on Plexiglas: 이하 디아섹) 이번 출품작들은
대작이 주류를 이루었다. 전시장은 이 대작들이 뿜어내는 화려한 분위기로 넘쳐흘렀다.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화려하고 강렬한 느낌의 형광색의 이미지가 그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
다. 그것은 그녀의 개성이다. 흑백으로 처리한 독일 여인의 풍만한 육체를 난무하듯 화려하게 뒤
덮은 홍지윤의 꽃과 글씨, 새-이것들은 이제 그녀의 잘 알려진 아이콘이 돼 버렸다-등등, 그것들
은 하나의 화면에서 서로 충돌하면서 융합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서로 스미거나 섞이지
않는다. 사진 속의 여인은 깊숙이 가라앉아 있고, 그 위에 부초처럼 떠 있는 화려한 글씨와 그림
들은 그것들대로 하나의 표면층을 형성하고 있다. 포토샵이 가져다 준 기술적 성과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그림에서는 어떤 물감을 사용해도 그처럼 뚜렷이 구분되는 층을 만
들기 어렵다. 사진의 번질거리는 느낌과 디아섹 의 번질거리는 표면은 두 개 층의 서로 다른 이
미지들이 서로 미끈거리며 탈주하듯 시각 장을 교란시킨다. 홍지윤의 이번 디아섹 작품은 가령
같은 내용이라도 화선지 위에 그렸을 경우와는 전혀 다른 미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질
적으로 다른 것이다. 화선지에 스며든 먹의 색깔과 그것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컴퓨터의 편집과
정을 거쳐 디아섹으로 포장한 색깔은 근본적으로 다른 감흥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객의 취
향이 판연히 엇갈리게 되는데, 누구는 화선지 위의 먹색과 종이의 질감을 좋아할 수도 있고, 사
진으로 출력된 먹의 색과 종이의 질감을 좋아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근본적의 감각의 차이에 기인
한다.
홍지윤은 여행을 즐기는 에뜨랑제다. 세계의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시적 감흥에 젖는다. 이미 그
녀의 작품은 시를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거니와, 한글을 비롯하여 한문과 영문 등을 빌어 화면
을 수놓고 있는 현란한 단어, 시구들은 그녀의 내면을 읽게 해 주는 일종의 주해들이다.

뜨거운 여름날 이름 모를 곳을 여행하고 있을 때에도 전시를 위해 동서분주 낯선 곳을 찾아 나
설 때에도 그리고 가만히 창가에 앉아서 부서지는 햇살에 무지개 빛 날개를 한 눈부신 새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나의 영혼은 바람 속 또 다른 어딘가를 맴돈다.
그대로 난 길이 아닌 아무도 모르는, 나조차도 몰랐던 길을 무심히 지나갈 때
자유, 방랑, 떠도는, 늘 움직이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영혼과 같은 단어들이 내 주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떤 이상도 감상도 이성도 감성도 아닌 내 심장과 혈류를 따라 흐르는
그러한 것들.

<홍지윤, Episode 1. - 여행: Blowing in the wind 전문>


짙은 초록의 풀과 나무, 그리고 그 사이에 화려하게 피어있는 꽃을 찍은 사진 위에 시가 적혀 있
다. 영혼은 대지에 영원히 머물지 못하고 잠깐 스쳐 지나갈 뿐, ‘빛의 기록물인 사진’이 그런 영
혼과 스치듯이 만나고, 그 영혼의 그림자와도 같은 시와 글씨와 그림이 또한 그들과 합류한다.

이제 사진과 포토샵, 디아섹은 홍지윤이 자신의 내면을 새롭게 드러내기 위한 표현수단이자 시
각적 장치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지필묵에서 사진, 포토샵, 디아섹으로의 이행은 홍지윤의 감
각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퍼포먼스 역시 자신의 내면을 보다 효과적
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홍지윤은 이미 <인생은 아름다워>(2008) 연작을 통해 지필묵에 의한, 현란하고도 화려한 시각
적 언설을 질펀하게 보여준 바 있다. 화면에 빼곡히 들어차서 서로 튀는 글씨와 꽃, 새들의 난
무, 시각장을 어지럽히는 그것들은 단순한 것과 정리된 것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미적 취향을 기
준으로 할 때 일말의 거부감이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러나 실험적인 것은 처음에 거부감을 준다
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홍지윤이 관심을 기울이는 이 실험은 의미심장한 데가 있다.
홍지윤의 작품은 문화예술의 퓨전을 통해 작가의 내면과 생활 세계가 만나는 교차로이다. 실크
로드가 동서문화의 융합을 가져온 것처럼 그녀의 작업은 더 당차게, 더 퓨전적으로 될 필요가 있
다. 그녀의 작업은 동서양의 온갖 문화적 형식을 집약하여 하나의 용광로에 집어넣고 제련할 때
합금처럼 그 반짝임의 빛을 더해 갈 것이다.



더 갤 러 리 기 획 초 대 Project 行間 02_홍지윤展
: hongjiyoon’s 11th solo exhibition - painting. & video 2008
인생은 아름다워. : 꿈결 같은 인생 : 그녀, 아름다운 꽃
Life is beautiful. : Being like a dream way : She, the beauteous flower
2008_0304 ▶ 2008_0329

2008 Seoul Art Guide 4월호 Exhibition preview
윤진섭(미술평론가/본지 편집위원)

홍지윤 3.4-3.29 더갤러리
화려한 색채로 시와 회화의 결합을시도하고 있는 홍지윤은 코리안 팝의 떠오르는 시기수 중 한 사람이다. 검은 먹 바탕에 화려한 꽃들이 마치수를 놓은 듯 부각되어 있으며 그 행간에 시들이 적혀있다. 그녀에게 있어서 언어는작가의 내면을 기숭하는 매체이며 동시에화면을 구성하는 인자나. 비디오 영상작품은 작업의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독자적인 퍼포먼스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더 갤 러 리 기 획 초 대 Project 行間 02_홍지윤展
: hongjiyoon’s 11th solo exhibition - painting. & video 2008
인생은 아름다워. : 꿈결 같은 인생 : 그녀, 아름다운 꽃
Life is beautiful. : Being like a dream way : She, the beauteous flower
2008_0304 ▶ 2008_0329



삶을, 사랑을 소요消遙하다._홍지윤

김최은영(미학, 더갤러리디렉터)

Stroll around the woods of life and love. _Hong, Ji Yoon


# 홍지윤의 그림은 詩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홍지윤의 붓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사이좋은 새들이 홍지윤의 붓끝을 타고 겅중겅중 꽃사이에서 노닌다. 화선지 위에서 이정도면 한 판 제대로 잘 놀았구나 싶은데 무어가 아쉬운지 빈 여백도 없이 공간을 타고 글들이 흐른다. 그리고 그곳에 흐르는 글들은 너무도 정직하게 읽히는 홍지윤의 일기요, 詩다.
홍지윤에게 일기와 시, 그리고 그림에는 순서가 따로 없다. 그저 날들을 살며 기록한 일기가 시가 되고, 시가 그림이 된다. 거꾸로 그림이 시로, 일기로 둔갑하기도 하니 그러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적어넣은 삶과 사랑을 순응이라도 하듯 글자와 화면 사이사이를 다시 먹으로 일일이 채워나가는 노동같은 작가적 習은 차라리 유희처럼 보인다.


# 홍지윤의 그림은 노래다.
꽃도, 새도, 시도, 물방울도, 이름모를 점들도 홍지윤의 화폭 위에선 춤을 추는 듯 보인다. 옛화론에서도 익히 말하듯 붓끝에서 그의 기운이 생동하기 때문이고, 그 생동하는 기운이 마치 리듬으로 읽혀 그림을 보는 것인지 음악을 듣는 것이지 가늠이 필요없는 심상의 노래가 된다.
붓으로 노래하는 그의 작업은 외롭거나 슬픈 아다지오adagio라기보다 행복하고 따뜻한 미뉴에트minuet 같다. 그렇다고해서 그저 말랑말랑한 감정의 얄팍함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자신보다 타자를, 21세기에 문인정신을 담담한 곡조로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질곡을 어느 정도 맛본 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미소 같은 구석이 보이기 때문이다.

# 홍지윤의 그림은 그녀다.
타자에 대한 사랑도, 그림을 그리는 마음도 저렇게 시와 노래로 이야기하는 홍지윤이다. 그래서 그의 시와 노래는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니 어찌 홍지윤이 그 모든 것이 담긴 그림 그리기를 멈출 수 있겠는가.
이 멈출 줄 모르는 작가는 다시 다른 방식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엮어 새로운 화면으로 보여주는 영상작업이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조금 더 달라진 화면의 구성과 홍지윤의 새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을 뿐.
그리고 보여지는 방식이야 그 무엇이 되었든 홍지윤 그림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 홍지윤, 삶과 사랑을 소요하다.
전통의 방법을 막연히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이기에 고수하고 있는 먹과 종이. 그런 그를 두고 화선지 위에 먹과 붓으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넣었으니 굳이 옛문헌이나 기록에 의존한다면 현대판 문인화라고 끼워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먹으로 그린 후 미디어와 라이트박스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 퓨전 동양화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굳이 그렇게만 단정지어 부르고 싶지는 않다.
시를 짓고, 그림으로 노래하는 홍지윤은 문인보단 이 시대의 예술쟁이로, 퓨전 동양화보단 포스트 동양화로 더 질펀하고 더 폭넓게 제대로 놀아주길 희망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마치 장자의 우화에서 나온 이야기 소요유消遙遊와 같다. 장자가 말한 유희는 단순한 의미를 너머 그 속에서 드러나는 자유스런 마음을 승화시켜 얻어지는 정신의 해방을 뜻한다. 이런 유희는 자발적이며 신명나는 유희이다. 내가 홍지윤의 그림을 보며 '한 판 논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그러니 어쩌면 홍지윤은 이미 삶과 사랑을 치열함을 넘어서 소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 Hong’s drawing is a poem.
Various colors of flowers bloom on her brushes. Birds in peace move freely among flowers along with her brushes. Those paintings seem to be enough on the drawing paper which normally take the void space for granted in the way of oriental drawing, but, in her drawings, there runs the full scripts of types in that with no void space. Those words come from her plain diary and poem.
To her, there is none of orders in diaries, poems and drawings. It's because diaries which describe her daily life become poems, then poems become drawings, and vice versa. As if she's adapted to those virtues of love and life written on above, her labor-like efforts to fill up blank space one by one between letters and images with Chinese ink seem to be somewhat a kind of enjoyment.


# Hong’s drawing is a song.
Flowers, birds, poems, water drops and even nameless dots appear to dance on her drawing. Emphasized in Oriental paintings, it is because her lively spirits pass into paintbrushes and eventually on her paintings. So to speak, the high-spirited liveliness is to be read as rhythms which need not to distinguish between listening to music and seeing the drawings.
Trying to communicate through the touch of brushes, Hong’s paintings are a happy, hearty minuet rather than a lonely, sad adagio. However it is not meant to be shallow sentimental tricks to stir her viewers. From the fact that she can tell a story of others not herself and sing a spirit of 21st century Literary Art, we could see at her warm smile that a person can get by going through harsh hours.



# Hong’s drawing is herself.
She shows both love for others and heart for drawing with poems and songs. Therefore, her poems and songs are very self-confessed. This is why she cannot cease drawing which contains all of her characteristics.
This time, ceaseless painter starts to show us her works in another way. After writing types and drawing images, she weaves those two things and work out some new media arts. Of course, this is not the first time, but it has gained some new stories about hers and compositions of screens differentiated a little than before. Whatever the media be, those things finally can be resulted in own narratives of hers.


# She strolls around the woods of life and love
She chooses Chinese ink and Chinese drawing paper, not the just way of following the tradition, but the way of communicating herself most properly. So, some people may think of her works somewhat a Contemporary Literary Painting. Also, the other may say she's doing the Fusion-styled Oriental Painting in that she develops her work methods through the media tools and light boxes after drawing with Chinese ink. However, I would not like to conclude in such a narrow-viewed way.
Because I want Hong, composing poems and singing throughout drawing, to be a more artist rather than literary man in this generation, and to perform broadly and widely in Post Oriental Painting rather than Fusion-styled Oriental Paintings. Besides, that is similar to the story of SoYoYoo (it means strolling around freely) from parable of Tseng-tzu. The enjoyment in Tseng-tzu pursues, beyond the simple meaning, the liberalization of mentality throughout a kind of metamorphosis. These enjoyments are self-spontaneous and full of joys. This is why I've used the terms of 'play one game' about her works.
Therefore, maybe, I've got some thoughts that she already strolls around the woods of the life and the love beyond the severity of life.




2007
문화일보갤러리 기획 초대展
홍지윤 퓨전동양화展 吟 遊 浪 漫 幻 想
: hongjiyoon’s 10th solo exhibition - painting. & video 2007
- 원효로(元曉路)와 청파동(靑坡洞)에서 낭만적인 시를 짓고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다
2007_0502 ▶ 2007_0515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서울문화재단_SK텔레콤

환.상.변.주.곡_운율을 담다 ● 음악과 시를 좋아하는 그녀의 청파동 작업실에는 노래와 시상詩想이 그치질 않는다. 그녀 특유의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기질에서 비롯된 시적 감흥은 붓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발상의 시초가 되어 우울과 즐거움, 슬픔과 기쁨을 적어 내린다. 그리고 그것은 작품이 된다. 홍지윤의 작업은 시상詩想 에서 출발한다. 그의 글은 순수한 외면적 사물, 인간활동에 대한 과장된 묘사도 아니며 내면적 영혼, 사변, 철학에 대한 추구도 아니다. 현실적 인간세계에 대한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인식과 느낌이고 동경과 집착이다. 여기에는 일종의 풍성하고 젊은 정열과 상상이 스며들어 있다. 설사 낙심, 우울, 슬픔에 대해 묘사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역시 젊음, 자유, 기쁨의 기운이 약동하고 있다. 그 기운은 글과, 글을 담은 글씨와, 글씨를 벗한 그림을 통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렇게 작품은 운율韻律을 담는다.

상충相衝의 미학 ● 문자와 그림의 조합은 2005년 개인전《사계》와 지난 2006년 독일 뮌헨시청갤러리에서 열렸던《친구 넷-사군자》전시1)에서 그래픽을 이용, 문자와 그림을 오버랩하며 구체적으로 영상화되기 시작한다. ‘문자(단순한 텍스트가 아닌 의미를 지닌 문자)’가 작품 안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된 이번 전시는 시, 서, 화詩書畵 일치의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또 다른 방향’이란, 그의 작업이 동양화의 기본이 되는 지, 필, 묵紙筆墨과 시, 서, 화를 적절히 따르면서도 표현방식으로는 다양한 매체, 즉 형광안료와 천, 라이트박스 등을 혼용하고, 내용은 문학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고도의 은유와 함축의 상징성을 사용함으로써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이중적 작풍을 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얼개처럼 짜여진 구조는 한 매체나 기조가 다른 것에 흡수되는 형국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함으로써 퇴진출신(退陣出新_낡은 것을 사라지게 하고, 새로운 것이 나타나게 함)2)의 국면을 본능적으로 시도한다.

작가는 대표적 표현기법들의 대치를 통해 내용을 극대화하는데, 각 기법과 내용은 팽팽한 긴장의 연상선상에서 균형을 잡는다. 즉 글씨와 색, 내용과 이미지를 대치시키거나 매체의 적극적인 활용이 바로 그것이다. 화려한 색동바탕에 먹으로 써 내린〈환상적인 무지개〉, 〈환상적인 세상〉등 환상시리즈나〈좋을 好〉,〈무지개에게〉와 같은 작품은 강렬한 색과 그에 버금가는 문자의 강제성이 충돌하며 증폭된 효과를 만든다. 문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는 이들에게 ‘읽히는’ 강제성을 지닌다. 때문에 문자를 그림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시도다. 글자의 강제성으로 인해 여타의 시각적 요소들을 일순간 불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러한 위험요소를 형광의, 발광하는 색동과 대치시킴으로써 양측에 균형을 부여한다.


이러한 위험은 내용과 이미지 사이에도 일어나는데, 사군자四君子의 소재인 국화나 만개한 꽃, 새의 고전적 이미지를 사용함과 동시에 강렬한 노랑과 분홍, 주황의 형광안료와 가장 극적으로 대치되는 검은 먹을 끌어들임으로써 이미지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서쪽하늘의 들국화〉나〈꽃 속에 꽃이 핀다〉처럼 자칫 이미지를 삼켜버릴 수 있는 텍스트의 강렬한 아우라를 그에 대응하는 형광색동과 만개한 꽃 이미지를 병치시킴으로써 무게중심을 잡은 것이다. 또한 문자를 흘려 씀으로써 가독성(可讀性)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마치 문양처럼 처리한 것도 역시 동일한 효과를 가져온다.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뜨리고 전통의 굴레를 타파해 나가되, 씨실과 날실의 조화처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은 다층적 층위의 교묘한 장치들을 통해서 동양과 서양을 혼재하되, 매체의 혼합만이 아닌, 이미 그 구분이 모호해진 사상과 화풍의 혼합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묵을 바탕으로 음각처럼 그림과 글씨의 윤곽을 파나간〈용서〉,〈불꽃나무〉,〈슬픔이여 떠나라〉등은 보다 전통적 동양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수묵을 주조主潮로 작가자신을 형상화한 여인이나 매화, 새를 등장시킨 것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이여 떠나라’는 브라질 전통가요의 구절을 새기거나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여인, 또는 일견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손을 뻗어 용서를 구하는, 혹은 베푸는 여인의 모습은 수묵이라는 재료가 가질 수 있는 한계를 일순간 깨뜨리며, 그 이상을 누린다. ● 홍지윤의 작업은 이렇듯 텍스트와 이미지가 상충한다. 또한 먹과 현대의 안료가 상충한다. 종이와 미디어 역시 충돌한다. 이 다층적인 충돌은 작업 전면의 적절한 장치와 구조를 통해 해결되고 화해함으로써 홍지윤의 퓨전동양화3)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문화적 선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환상은 어디에 ● 작가는 환상을 시공간과 대유하며 순차적 정의를 내린다. 그것이 지나간 것에 대한 환상(喚想, illusion)이든, 지금 눈앞에 보이는 환상(幻像, phantom)이든, 나도 모르는 새에 일어나는 환상(幻想, fantasy)이든, 실체도 없이 허망하고 덧없는 내일의 환상(幻相, vision)이든. (홍지윤, 작업노트 중에서, 2007) ● 이번 전시의 모태가 된 ‘환상’의 인상은 익숙한 일상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감정들을 구체화 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터무니없지만, 즐거운 상상의 나래는 작가적 상상으로 발전하여 앞서 언급한 다양한 매체와 내용으로 작품에 발현된다. 따뜻한 홍차를 약속한 그녀의 초대 (홍지윤의 詩,〈초대〉中)를 따라 원효로와 청파동의 골목인상을 반갑게 맞이할 일이다. 서양인에게도 낮선 / 동양인에게도 낮선 / 그 간극에서.
■ 성윤진

초대 ●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날 / 오후 3시 즈음에 이리로 오세요. / 뿌연 겨울 해가 따뜻하고요 / 그 해가 보이는 창가에는 조용한 새들이 가끔 날아가요. / 그리고 바흐의 아리오조를 첼로독주로 들으면요 / 그 어떤 여행지보다 / 그 어떤 천국보다 더 천국 같거든요. / 바닥엔 너무 깨끗하지 않게 먼지 몇 개 찬찬히 얹혀 져 있고요 / 새로 단 표백하지 않은 베이지 빛 광목 커튼이 / 찬 겨울바람도 막아준답니다 / 편안한 의자에 앉았다가 / 좀 겨를이 나면 / 따뜻한 홍차도 끓여 드릴께요 / 당신이 꼭 이 곳에 왔으면 좋겠어요. ■ 홍지윤




With a Rhythm ● Her studio is always filled with music and poetical imagination for her preference to music and poetry. The poetical inspiration based on her peculiarly cheerful and romantic views is the origin of creativity and the mainspring of brush works. With the inspiration, she makes melancholy, enjoyment, sorrow and pleasure. It is very her arts. Jiyoon Hong's works start from the poetical inspiration. Her words are neither purely outward objects and exaggerated representation of real human world nor the pursuit of inward spirits, speculation, and philosophy. But it is just positive, romantic consideration and feeling and yearning and persistence toward the human world. A kind of plentiful, young passion and imagination sinks into hers. The expressions of depression, gloominess, and sorrow are even filled with the power of youthfulness, freedom and pleasure. The power is fully reflected with the words, handwritings for the words and pictures with handwritings. Then she puts rhythm into the works.

Contradictory Aesthetics ● The combination of words and paintings had started propriety to show in the exhibition, 2005 solo exhibition in Seoul Korea and 2006 project exhibition in Munich Germany, containing overlapped images of words and paintings. 1) This exhibition which 'the word (has meaning, not just text)' actively interrupt in the works of art presents another direction of the correspondence between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 The another direction means the mixed composition that depending on the basis of oriental paintings like paper, pens and ink and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 the works use diverse media like fluorescent paints, clothes and light boxes for the expression. In addition, it means to get contemporary and traditional styles at once for the contents using metaphor and implication based on literary lyricism. This complex construction is ultimately to make the new better adopting merits of each other and making up for the defects. It is not just to make one separated thing absorbed to the other. 2)

Hong maximizes contents with her typical expression ways; the ways and the contents balance in the extension of high strain. It is the confrontation of words and colors or contents and image and the active use of media. The fantasy series like 'The rainbow... It was fantastic', 'Fantastic world' drawn by black ink on a colorful ground and 'Likeness' and 'To the rainbow' make amplified effects for the co-use of strong colors and stressed words. The word per se has a special characteristic to let automatically audience read, so it could cause huge risks to use word in paintings despite of the attractiveness. It is because the visual factors can disappear for the word in an instant. Hong prevents the risk with the fluorescent colors to balance between words and images.


This kind of risk can be caused between the contents and images. To stress the effect of images, making classical images of chrysanthemum, fully bloomed flowers and birds, she use the strongly fluorescent colors of yellow, pink and orange with black ink. Like 'Chrysanthemum in the Western Sky' or 'A flower blooms in a flower...', the strong aura of text can make balance with colors, as strong as the text, and fully bloomed flowers. In addition, it causes same effect to scribble the words for the effects of decreased readability. Trying to break existing rules daringly, she makes her peculiar arts with the creative combination of the Eastern and the Western thoughts and styles.

It shows the classical oriental paintings that 'Forgiving', 'Flame tree', 'No more blues-reply: chega de saudade', 'Four friends- plum, orchid, chrysanthe-mum and bamboo' and so on are made in the basis of black and white drawing and are formed pictures and words like engraving. Nevertheless, for instance, 'No more blues-reply: chega de saudade' contains simultaneously a paragraph of Brazilian folk songs and a woman playing guitar and another woman showing the love of mother. This work brings more than effect overcoming against the limitation of the materials like blank ink. On this wise, Hong's works is created with texts and images in the contradiction moreover, classical ink and contemporary colors exist in contradiction. Paper and media even make contradiction. The multilayered conflicts preferably make Hongjiyoon's fusion oriental paintings. 3) Like most cultural forerunner in every areas. Where is the Illusion ● Hong synechdochically makes a definition of llusion according to time and space Whether Illusion of the past, Phantom of the present, Fantasy formed unconsciously, or Vision of unsubstantial, vain, ephemeral tomorrow. (Jiyoon Hong, in the work notes) The impression of 'illusion', the main theme of this exhibition, is the embodiment of emotions happen frequently and easily in the ordinary life. The unreasonable, but pleasant imagination in her childhood is eated as the works with various media and contents. For her invitation for warm black ea, the impression of streets of Wonhyo-ro and Cheongpa-dong might be glad to go. In the gap / strange to Westerners / strange even to Asian. ■ Sung,yun-jin

invitation


On a day not so sunny not so cloudy
Come here around three o’clock.
Dim winter sun is felt warm
Birds fly quietly from the window through which I can look at the sun
And, listening to the Arioso of Bach played by cello, solo,
More than any other resort
More than any other heaven
It looks like heaven.
On the floor, there is a little dust to show not too much cleaning
Newly hung unbleached beige cotton curtains
Will block even the cold winter wind.
Sitting on a comfortable chair, when I have any time
I can brew you warm tea.
I wish you would really come here.

■Hong,Ji-yoon




.........문인화적 모색은 홍지윤의 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그만의 조형적 시각과 다양한 재료의 혼용으로 시, 서, 화 일치를 시도한다. 시, 서, 화와 지필묵의 전통이 등장하고 미디어(영상/그래픽)를 통해때때로 재구성되기도 한다. 이를 테면 부분적으로 칼리그래프(서예)가 타이포그라프의 형식으로 보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사이에서 글씨와 그림이 흘러간다. 여기로 그린 그림처럼 자유로운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서 서예나 시의 요소가 홍지윤의 회화에서는 필요하다. 이는 전통에 대한 재해석이라거나 새로운 어떤 것에 대한 비약적 논리가 아니라 작가가 할 수 있는 익숙하고 즐거운 작업의 특색이고 특징이라고 홍지윤은 말한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는 행위를 통해 문인적 취미와 작가적 의식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그의 그림에 보이는 화려한 형광 색은전통적인 오방색 이라기보다는 텔레비전 화면조절용 컬러배열처럼 보이며 전통화화의 시간적 측면은 영상적업을 통해 친밀하게보여 지고 있다........

임종은, 2007월간미술 6월호 Special feature - 감각적 감수성으로 무장한 신세대 작가 (전통을 넘어선 새로움 움직임)


컬쳐뉴스 / 리뷰&칼럼 / 풍경의 뒤꼍[정형탁 _ 전시출판기획자]
[전시리뷰] 홍지윤 《음유 낭만 환상-원효로와 청파동에서 낭만적인 시를 짓고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다》
▲ 홍지윤의 시서화(詩書畵) 전시는 청파동 작업실에서 겪은 작가의 내밀한 심상과 주변 풍경의 뒤꼍을 보여준다.

갑자기 봄날이 온 것 같았던 따스하던 며칠 전에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아름다운 철쭉이 이천 원이요, 이천 원이요”하던 꽃장수 아저씨에게 뛰듯이 달려 나가 사온 푸르기만 하던 철쭉 화분 두 개에 오늘 분홍 꽃이 활짝 피었다. 정말 환상적이다.- 2007년 3월 25일 청파동에서 홍지윤

두 입술이 열리면서 몸 속 어딘가에 숨어있던 싱싱한 ‘파’음이 몸 밖으로 배출되는 듯한 느낌을 지닌 푸른 단어, 청파동(靑波洞). 홍지윤의 이번 전시 《음유 낭만 환상-원효로와 청파동에서 낭만적인 시를 짓고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다》(5월 2일-15일, 문화일보 갤러리)에서 선보인 시,서,화(詩,書,畵) 전시는 청파동 작업실에서 겪은 작가의 내밀한 심상과 주변 풍경의 뒤꼍을 보여준다.
내가 이번 전시 리뷰로 이 작가를 선택한 이유는 90년대 이후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서사가 주를 이룬 미술 판에서 감각적인 서정을 이토록 형식적으로 잘 표현하는 작가를 못 봐서다.

no more blues

개인전으로 10번째인 이번 전시에서 홍지윤이 보여 준 작품의 내용과 형식은 가히 다채롭다고 할 만하다. 풍경을 사색의 깊이와 울림으로 거른 감성은 화면 가득 시적 텍스트로, 때로는 커다란 꽃잎파리로, 감성이 이입된 새로, 나무로 화면을 채운다. 화면 전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자유로운 먹의 운용은 붓이라는 부드러운 매체를 통해 종이 위를 사뿐사뿐 날아다니면서 생명이 꿈틀거리는 화면을 구축한다. 영상과 형광안료, 라이트박스와 디아섹 등 작품을 담아내는 형식에 있어서도 동양화라는 범주로 가두기가 무색하리만치 다양하다. 형식과 내용의 이러한 변주에서 가장 눈에 두드러진 특징은 화면전체에 배치된 시어(詩語)다. 그는 일상에서 건진 모든 현상의 이미지들을 1차적으로 시로 표출한다. 가령 작년 독일 뮌헨에서 느낀 풍경에서 얻은 이미 저리는 노란 이파리가 화면 가득 채워진 <서쪽 하늘 들국화>로 태어나고, 우연히 들은 브라질 전통음악 <슬픔이여 떠나라(no more blues)>는 가사 가 배경이 되고 그 배경을 무대로 기타를 든 작가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시가 풍경이나 산수를 완성하는 마지막 장식구였다면 홍지윤의 시는 텍스트가 전면적으로 등장하고 형태로서 기능한다. 루빈의 술잔처럼 배경과 형태가 뒤바뀌어 이미지로서 텍스트는 운율을 만들고 화면에 적절히 배치되어 훌륭한 조형적 요소가 된다.


세상은 모든 게 침이고 독이다

주위의 모든 존재와 현상, 작가 자신과 교접하는 모든 일상을 비틀지 않고 고스란히 화폭에 착지시키는 방법에 있어서, 홍지윤의 작품은 사변이나 관념